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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22

지난 12월, 부독협의 인디클리닉 원고로 썼던 글인데 편집과정에서 홀라당 빠졌다고 한다. 미안하다는 인호선배의 말에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쿨하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 화장실에 앉아 인디클리닉을 펼쳐드는데 이 책의 한 면에 내 글이 담겨 있으면 괜찮은 선물이었을껄 하는 아쉬움들이 생긴다. 어디 게시할만한 곳이 없으니 이 곳 블로그에나 올려야지.



 

5년 전, 지금은 빈 건물이 된 시네마테크에서나는 처음으로 병석 군과 재경 양을 만났었다. 나보다 대여섯 살은 족히 더 돼 보이는 그들의 얼굴을처음 마주 했을 때,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무표정하고 말은 한없이 느리면서 게다가 하는 짓은 우울하기까지 했다. 하긴 재경은 표정이 우울하다는이유 때문에 입사했던 회사에서 하루 만에 잘리기까지 했으니. 병석은 딱히 정해진 직업 없이 웨딩촬영이나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고 있었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재산인 캠코더도 사촌의 빚을 갚기 위해 팔아 넘기려고 했다. 회사에서 잘린 재경은 경제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인 다단계에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된 쌀을 팔지 않았다는친구의 추궁에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기 바쁘고, 인생은 꼬일대로 꼬여서 급기야 카드깡에 손을 댔다. 이젠 치고 오를 바닥도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얼굴이 거친 입자 속에 담겨졌던 그 영화 <마이제너레이션>은 아름답지 않은 서울의 풍경과 그 속을살아가는 나의 세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그 때 나의세대라고 말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는마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힘겨운 삶 중 하나였고, 나는 그저 그런 타인의 고통을 바라만볼 뿐 체감하지 못했다. 그 때는 그랬다.

 

2년 전, 방을 구하러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는데조건에 맞는 방이 없어 하루종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싼 방이 있어 둘러보면 양 팔을 펴기도불편한 좁은 공간이었고, 그나마 살만한 방이다 싶으면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해는 지는데 방은 못 구하고 다리는 점점 아파서 제대로 서있기 힘든 상황에서 어렵사리 방을 구해 기차역으로가는 길, 버스 창 밖으로 검게 그을린 용산 남일당 건물을 보았다. 그날은 남일당 옥상에 있던 망루가 화염에 휩쌓였던 날이었다. 순간 내 몸 속으로 1월의 차디찬 공기가 한 차례 휘몰아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몸하나 편히 뉘울 곳 없는 타지에서 어떻게 혼자 살아가야 할지 갑자기 막막하고 두려움이 몰려왔던 것이다. 어떻게든살아보고자 망루에 올라 바둥대던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던 매정한 사회 속에 나는 철저히 고립된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병석과 재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점점 추락하고 있는 것도 체감하지 못할 정도의 무표정한 얼굴. 삶의 고통을 오롯이 느끼기도 전에 또 다른 시련이 닥치고야 마는 비정한 어른들의 사회를 바라보던 그 표정들. 이상하게 그 얼굴들이 내게 위로로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나만 이곳에서 낯선 두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위로.

 

반 년을 그 방에서 살았다. 옆 방의 코 고는 소리는 물론 팬티줄이 살에 맞닿는 찰라의 작은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릴만큼 사생활이라곤 전혀보장되지 않는 2평 남짓한 고시원 방도 적응하고 나니 적당히 아늑했다.무엇보다 수없이 많은 병석과 재경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과 마주 살다보니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져 소리로만 알 수 있는 옆 방남자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반 년의 고시원 생활을 마감하던 날, 짐이다 빠진 텅 빈 방을 걸레로 깨끗이 닦았다. 나처럼 낯선 두려움으로 이 방에 발을 딛을 그 다음 사람을위해서.

 

시간이 지나 그 영화를 생각하니 나는영화 속 그들과 다르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빚쟁이가 찾아와 호스로 물을 뿌리던 병석의 단칸방에나는 살고 있고, 카드깡을 하기 위해 재경이 아저씨를 따라 돌아다니던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통해집으로 간다. 어마어마한 학비를 준비하기 위해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코로 숨만 쉬며 일하지만 통장잔고는변함이 없으며 이러다 내 꿈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마이제너레이션>은 병석이 찍는 캠코더 화면 속 재경이 이제 그만 찍어라는 말로 끝나지만 우리는 계속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그 영화를 생각하면 문득 병석과 재경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배나무 위에 앉아있던 까마귀가푸드득 날자 배 하나가 뚝 떨어지던 기적 같은 변화를 바라지도 않지만 그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픽 하고 웃던, 영화속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에서 단 한번 보였던 그 웃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지금동시대에 사는 수많은 병석과 재경의 얼굴을 가진 나의 세대와 만나 위로를 나누고 싶다.. (마이 제너레이션, 111215. 안현준)

 

 

 

 

 

 



by lalla | 2012/01/22 12:55 | 일기 | 트랙백 | 덧글(0)
11.03.23

한참을 글을 쓰다 지웠다. 글이 뒤죽박죽, 문장과 문장에는 어떠한 고리도 없이 산산조각 된 느낌이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보니 죄다 일 생각이구나. 숙소에서 편하게 쉬려고 들어갔다가 커피 생각 나서 카페 나왔는데 책도 못 읽겠고, 기분이 영 바닥을 친다. 그나저나 옆에 앉은 여자들 수다에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한달 전, 전주에 왔을 땐 사투리 구수하니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전라도 사투리가 날카롭게 귀를 파고든다. 커피 천천히 마시면서 저 입들 하나하나 곱게 꼬매주고 싶은 오늘이다.

by lalla | 2011/03/23 20:55 | 미분류 | 트랙백 | 덧글(0)
11.01.24

11년 새해에 쓰는 첫 글. 그간 좀 바람이 나서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짧은 단상만 늘어놓다보니 긴 글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블로그 좀 나뒀는데, 오래 비워둔 집처럼 괜시리 걱정되고 마음이 쓰여 오랜만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거미줄 좀 치고 사람 사는 집처럼 발도장 찍으려고 이렇게 쓸 말도 없는데 적고 앉았다.

2010년, 잘 마무리 했다. 잘 살았다, 라고 자평하긴 그렇지만 그렇다고 못 살 것 까진 없었던 한 해. 돈 벌고, 사회생활 열심히 하고, 여러 사람 만나고, 드러운 꼴 못 볼 꼴 봤으니 한해가 그저 그랬다고 말하긴 그렇다. 그만큼 많이 배웠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나 자신이 조금은 단단해 진 한해였지 않았나 싶다.

2011년, 잘 맞이 했다. 연초부터 일이 들어오더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일이 들어왔다. 부천에서 청소년 영화 아카데미 조교 일을 했는데, 사실 지옥같았다. 새벽같이 부천으로 출근하는게 지옥이었고, 아이들 영화제작에 하나하나 체크해야 하는 업무부담이 지옥같았다. 하지만 내 영화같이 아이들 영화가 소중했다. 1년 넘게 영화를 찍지 않고 있어 혹시 감이 죽은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번 작업으로 나 역시 많이 배웠다. 그래, 기본이 중요한거야. 이젠 '옛날'이라고 회자할 수 밖에 없는 과거의 기억을 오랜만에 끌어올려봤더니 그 옛날, 동급생 아이들과 8미리 카메라를 들고 뭣도 모르고 '영화'란 걸 찍겠다고 동분서주하던 일들이 생각났다. 소중했다. 옛 기억들이. 그래서 옛 친구들이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옛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한편으론 내가 기성세대가 되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이가 먹는 건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정신이 늙으면 안되는데. 아이들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아이들이 꼬깃꼬깃 접은 종이에 편지를 쓴 걸 보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니, 좋은 어른으로 크고 싶었다.

지금은 꼬리에 꼬리를 문 다른 일을 시작했다. 또 영화제 일이긴 하지만 다른 업무. 리프레쉬 되는 느낌이다. 작년 업무보고서를 읽고 있으니 약간의 희열감도 느낀다. 조금 부담스러운 업무긴 하지만 이제는 마냥 피할 수 만은 없는 그런 나이가 됐음을 느낀다. 조금은 많은 경험과 조금은 천천히 새해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 점차 내가 가야 할 길과 멀어지고 있다고,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고 자책말자. 길눈이 밝은 내 경험 상 모든 길은 이어지니까. 음, 이거 쓰고나니 좀 손발 오그라든다. 추우니 당연지사.

시간 날 때마다 대만여행기 업데이트 해야겠다. 점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딜 갔는지 기억 속에서 멀어진다.

춥다. 카페. 커피 맛도 없으면서. 쳇!

by lalla | 2011/01/24 22:34 | 일기 | 트랙백 | 덧글(2)
대만 2일째 (실질적으론 1일)_ part 2

스캇을 졸졸 따라가니 저 앞에 차량무리들이 보였다. 대충 승합차겠거니 했는데 도착한 곳은 ... 허거걱! 이건 벤쯔? 기사분이 뒷문을 활짝 열어주신다. "타.. 타면 되요?"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툭 튀어나왔다. 황홀한 대접에 머리가 띵하면서 어떻게 올라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탄 검정벤쯔는 공항을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보조석에 탄 스캇은 내게 전단지를 하나 주며 "너 꽃박람회에 갈래?"라고 물어봤다. 그러고보니 오늘 오전일정 중에 '타이페이 시티투어'가 껴있었다. 가봐야 중간에 끼어야 할텐데 구경도 별로 못할 것 같아 그냥 극장에서 영화를 보겠다고 했다. 시간표를 보니 1시 30분 영화에 대만영화 하나, 중국영화 하나가 있었다. '죽음과 영광과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영화가 왠지 재밌을 것 같아 중국영화로 선택.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극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나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스캇은 애니라는 여자분과 바통터치, 함께 극장으로 갔다. 극장은 백화점 지하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 애니와 티켓을 끊고 들어가니 이미 영화는 시작했다. 예상대로 전쟁영화. 총 쏘고, 총 맞고, 실려가고, 터지고 하는 기억 밖에 없다. 국가주의 살짝 첨가한 좀 지루한 영화. 한참 보고 있는데 얼레? 중간에 극장 불이 켜졌다. 아마 필름에 붙은 은박을 영사기가 읽은 듯 했다. 근데 한국처럼 항의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는게 의아했다. 그렇게 불 켜진 채 상영되고 한 두권 넘어갔나, 극장 불이 꺼졌다. 또 한번 영사기가 은박을 읽은 듯. 이런 광경을 지켜보며 구석에서 쿡쿡 웃었다. 깐느에서는 영사사고가 일어나면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 일도 있다는데 한국은 영사사고에 대해 너무 민감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첫 영화가 무사히 끝나고 영화관을 나왔다가 지위를 만났다. "지위!!!" 입에서 한국말 터진게 얼마만인지. 지위랑 극장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또 두번째 영화관람. 홍콩영화였는데 장난아니게 지루했다. 졸다 일어났다 졸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크레딧 올라갈 때 우뢰와 같은 박수작렬! 극장을 나오면서 자원봉사자는 또 애니에서 에밀리로 바뀌었다. 한국어를 꽤 구사하는 대만소녀. 에밀리와 지위, 예정대로라면 나와 함께 대만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나의 늦장에 먼저 대만으로 가버린 두흥과 함께 호텔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타이페이의 모습은 한국과 꽤나 비슷하다는 인상을 줬다. 서울과 부산을 적절히 믹스한 느낌같아 내가 정녕 대만이라는 나라에 온겐가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애니에게 했더니 "Oh! really? Like seoul?""Seoul and Busan mix.""Oh...""...." 그래, 입은 간지러우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평소에 영어공부 열심히 할껄.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야시장가는 관광버스로 갈아탔다. 아니, 이건 뭐 담배 태울 시간도 안주는 살인적 스케줄! 대만의 관광버스는 대체적으로 이층버스였다. 처음 이층버스를 타보는 나는 또 한번 감탄작렬! 이렇게 높은 자리에서 도로를 달려 본 경험은 덤프트럭 탔을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야시장으로 인도하는 버스기사 아저씨는 무척 다혈질이었다. 야시장 근처에서 앞선 영화제 차량행렬을 놓치고 중국 관광객 버스를 따라가던 아저씨는 짜증난다며 호텔로 돌아가자며 막 불법유턴을 행하셨다. 그것도 경찰관 앞에서. 아아, 야시장 가는 것부터 뭔가 험난하다.

by lalla | 2010/12/11 20:11 | 트랙백 | 덧글(0)
대만 2일째 (실질적으론 1일)_ part 1

간밤에 새우잠을 잤다. 새벽2시에 깼다가 잠이 안와서 티비에서 하는 영화를 봤다. 3시 반에 잠깐 잠들었다 한시간만에 기상. 샤워하고 집을 나서는데 어제랑은 차원이 다른 추위에 오돌오돌. 오늘은 기필코 공항에 빨리 도착하리라. 버스정류장에 가니 바로 앞에 공항행 리무진이 서있었다. 앗싸! 바로 올라타서 공항출발. 새벽이라 시원시원하게 뚫리는 올림픽대로.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늦게 나올껄 그랬나, 하는 게으른 생각 잠깐! 잠깐 졸았는데 금새 공항도착. 시계를 보니 7시다. 딱 한시간만에 도착해버린 상황. 아, 어제도 그냥 리무진 탈 껄 그랬네. 티켓을 끊고 트위터질, 페이스북질 하다가 8시 좀 넘어서 수속밟고 게이트 번호 확인하려고 표를 보니 41A라고 되어있길래 '아, 41번 게이트에 A가 있고 B가 있나보다'하고 여유로이 41번 게이트로 향했다. 41번 게이트 앞에서 또 트위터질, 페이스북질 하다가 비행기 사진도 좀 찍으면서 놀다보니 얼레? 내가 타야되는 비행기는 케세이퍼시픽 비행긴데 밖에 서있는건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네.

 

기다리고 있음 이따 비행기 오겠지 싶어 앉아있는데 왠지 불안한 마음에 다시 티켓확인. 허거억! 내가 본 게이트 번호는 사실 좌석번호일세. 실제 타야하는 게이트는 123번. 급히 가방 둘러메고 123번 게이트로 이동. 이거 왜 이렇게 먼게여! 막 지하철 같은거 타고 이동해야되는 거리였다. 조금만 늦게 확인했으면 또 타지도 못했을 짓을 해버린 셈. 아아, 부처님 하느님 땡큐! 비행기에 올라타서 41A좌석에 제대로 앉아 출발. 이륙 후 30분 지나니 기내식 타임. 스튜어디스 언니들이 끌차를 끌고 오면서 식사대접을 하는데 살짝 긴장. 한국 스튜어디스가 없어! 온갖 신경을 귀 쪽으로 몰아 언니의 말씀을 집중. "어블리 러블리 or 치킨누들?" 제길슨! 치킨누들 밖에 못들었다. "치킨누들 플리즈!" 나에겐 치킨누들 밖엔 선택권이 없었다. "어블리 러블리 드링킹 어쩌구?" 예상치 못한 순간 기습질문에 '드링킹'만 듣고 "어륀지 쮸우-스 플리즈". 아아, 내가 너무 기특했다. 어딜가도 배 곯으며 살지 않겠구나, 하는 안심. 기내식 다 먹고도 한시간이 남아 책 좀 읽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이미 비행기는 착륙해서 활주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 제길! 착륙의 순간을 즐기지 못했어!' 그래도 비행기 아홉번 정도 탄 도시남자라서 이런거에 별 감흥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난 이륙과 착륙의 순간에 가슴이 벌렁거리는 촌놈이었던 것.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밟고 출구 게이트로 나왔는데 나와있을 줄 알았던 친구가 안보였다. 작은 공항이라 한 눈에 보일 법 한데 어딨는지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아아, 농담처럼 말했던 국제미아가 된건가. 로밍도 안해 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저 멀리 영화제 피켓을 들고 있는 키다리 남자가 보였다. 조심히 다가가 "익스큐즈미, 아임 코리언. 알 유 필름 페스티벌..." 했더니 내 이름을 적은 종이를 내밀며 맞냐고 물어봐서 고개만 끄덕끄덕. "나이스 투 미츄" 반복학습의 얕은 결과물을 막 쏟아내며 국제미아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급 반가움을 내비쳤다. "마이 네임 이스 스캇!" "오오- 스카아앗!" 스캇은 영화제 차량을 전화로 불렀고 차량을 기다리는 사이 나는 환전을 했다. 예상대로 5000위안 정도 떨어졌다. 2박 3일인데 쓰고도 남겠지. 스캇을 따라 공항 밖으로 나섰더니 날씨는 약간 선선하고 바람은 작살나게 불었다.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아, 여기가 대만인가. 얼떨떨한 기분의 연속.

by lalla | 2010/12/10 12:0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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